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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동네

울산호적대장

by 애린양 2022. 8. 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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울산호적대장
[ 蔚山戶籍大帳 ]

 

조선 후기 경상도 울산부의 호적. 

필사본.59책. 규장각도서. 1609년(광해군 1)~1904년의 장적(帳籍)으로 크기는 일정치 않으나 대략 가로 53 cm, 세로 64 cm이다.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에서 3년마다 3부의 호적을 작성하여 1부는 그 지방 관아에서, 1부는 감영에서, 1부는 전기에는 호조, 후기에는 한성부에서 보관하였는데 그 중 한 질이 남아 있는 것이다. 

대개 면 단위로 작성되었으며 울산의 10개 면 중에서 4개 면의 자료가 조선 후기에서 개항 전까지 연속적으로 남아 있다. 다만 1900년 이후의 6책은 도한(屠汗) ·승려 등 특수 신분층에 대해 작성된 것들이다. 먼저 전체 호구수, 변동 사항, 작성 담당자 등을 밝히고 호구별(戶口別)로 호주의 직역, 신분과 성명, 나이 ·생년 ·본관, 부 ·조 ·증조의 직역과 이름, 외조의 성명 ·나이 ·생년 ·본관, 처의 성과 신분 표시, 나이, 생년, 호주의 사조(四祖)에 대해서와 동일한 형식으로 기재한 처의 사조에 대한 사항, 모(母) ·동생 ·자녀 ·자부 ·사위 등 동거 식구의 이름과 나이, 노비 ·고공의 이름 및 나이와 그 부모 이름 ·거주지 ·변동사항(매입 ·도망 등)을 기재해 놓았다. 

비록 지역과 시기 모두 빠진 것이 적지 않으나 한 지역의 호구상황이 오랜 시기에 걸쳐 일관된 형태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자료가 된다. 특히 1970년대 이후 그것을 이용한 신분 변동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도출되었는데, 한 예를 들면 1729년(영조 5)에서 1867년(고종 4) 사이에 양반 인구가 19.39 %에서 67.08 %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동시에 상민(常民) 인구가 49.57 %에서 18.27 %로 격감하였으며, 외거노비는 9.2 %에서 0.3 %로 사실상 소멸하였으며, 솔거노비는 21.83 %에서 14.36 %로 변화했으나 그 중간의 수치가 일관적이지 않아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다는 것이다. 
 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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